촌락 형성을 위한 노력

촌락 전망
바람과 조수를 막아주는 후쿠기 가로수
은부후루 언덕의 포석
다케토미지마의 촌락은 11세기경부터 오랜 세월을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섬이 성립하게 된 역사 속에도 나와 있습니다만 무야마(六山) 시대에는 각 씨족별로 만들어진 촌락이 있었는데 섬 안에서의 정치적인 움직임이나 류큐왕부(琉球王府)에 의한 지배 등과 같은 일들의 영향을 받아 현재의 촌락 모습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실제로 유적으로 남아있는 촌락 터나 이동이 지극히 적은 다케토미지마 온(御嶽) 씨족의 자손이 살고 있는 장소의 분포상황, 무야마 온(御嶽)의 위치, 다나두이(種子取祭)의 유래, 문헌사료 등을 통해 설명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동과 통합의 역사에 의해 예전에는 주로 바다 근처나 벼랑 위에 있었던 촌락이 현재는 통합 전과는 전혀 다른 입지 환경인 섬의 거의 중심부분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자마(玻座間)와 나카스지(仲筋) 2개의 촌락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류큐왕부(琉球王府)에 의한 지배 하에서 씨족끼리 혹은 섬 바깥의 세력과 경쟁하는 일이 없어지고 방어를 우선하는 벼랑 위 토지에 분산되어 거주하는 것보다 생활하는데도 적합한 토지가 좋았기 때문이라고 말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이 촌락이 만들어질 무렵에는 이 섬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이 보다 쾌적하도록, 그리고 제사행사를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이 궁리되었습니다. 그것들을 차례로 살펴 보도록 합시다.
빗물 탱크와 부엉이
매일 아침 깨끗하게 청소된 길과 정원
산호모래가 뿌려진 길

1. 나무/방풍림

촌락을 둘러싸듯 큰 나무가 심어져 있으며 각 저택의 부지 내에도 후쿠기를 중심으로 한 나무들이 심어져 있습니다. 이것들은 평소에 바람과 조수를 막아주는 것은 물론이고 태풍 때 바람과 비를 막아주고 북풍으로부터 촌락의 길이나 저택을 지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 물/급수와 배수

산도 강도 없는 다케토미지마에서 물은 우물물이나 빗물을 사용했습니다. 우물은 ‘우리카’라고 불리는 석회동굴과 같은 산호동굴과 땅을 파서 만든 우물이 있으며 주로 섬 북쪽에 모여 있습니다. 이것은 이시가키지마에서 다케토미지마 북쪽까지 펼쳐지는 오래된 성층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가뭄 때에 물이 말라 버리거나 소금기가 섞여 있는 등 1976년에 이시가키지마에서 해저 송수가 되기 전에는 결코 물이 풍부한 섬은 아니었습니다. 그 때문에 그 귀중한 물을 사용하는 엄격한 룰이 있었습니다. 또, ‘시치마쓰리’에서 신을 모시는 사람은 각각이 담당하는 우물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리고 빗물을 이용하기 위해서 정원에 둔 탱크에 물을 모았는데 이것을 위해 지붕 가득 홈통을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그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또, 배수의 구조는 각 저택이 길보다 높게 위치하고 있어 빗물 등이 모두 길로 흘러 나오거나 지하로 침투됩니다. 길로 흘러 나온 물은 길을 따라 ‘아부’라고 불리는 동굴까지 모이게 되고 거기에서 지하로 침투됩니다.

3. 산책/산호모랫길

촌락의 길은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산호모래가 뿌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일부러 해안에서 옮겨 온 모래로 이러한 노력을 들여 길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물에 대한 기술에서도 나온 것처럼 빗물의 침투성을 높이기 위해서 입니다. 또, 밤길을 걸을 때 달빛으로 길이 밝아져 알기 쉽고 야행성 뱀을 발견하기 쉬우며 미관 역시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매일 아침 대나무 비로 쓸어 빗자루 자국이 선명한 길은 뭐라고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해포석 토라
저택 내에 남아 있는 오시
바둑판 눈 모양으로 이어지는 촌락
‘굿쿠’로 둘러싸인 섬 바나나 밭

4. 불과 바람/토라•굿쿠

바람이 강하고 목조나 초가지붕 가옥이 많은 섬 촌락에서는 불의 관리에도 신경을 썼습니다. 특히 집은 몇 개의 동으로 나뉜 형식으로 되어 있었고 취사, 세탁 등 물이나 불을 사용하는 작업을 하는 것은 생활공간인 후야(안채)와는 별도로 ‘토라’라고 불리는 별동을 세워 그 곳에서 했습니다. 또, ‘후야’의 벽은 나무를 사용했던 것에 대해 ‘토라’에서는 포석이라 불리는 바위를 잘라 쌓아서 벽을 만들었습니다. 또, 저택 주변에 산호석을 쌓아 만들어진 굿쿠(돌담)도 불이 옆 저택 가옥으로 옮겨 붙어 태우지 않도록 하기 위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불을 잘 사용하기 위한 지혜를 가옥이나 저택의 구조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5. 경관/촌락 구성

다케토미지마의 촌락은 길의 형태가 마치 바둑판 눈처럼 거의 균일한 규모의 저택이 나란히 늘어서 있는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정연(井然)형식이라 하는데 오키나와에서는 슈리의 도시를 비롯해 류큐왕부에 통치를 받은 역사가 있는 촌락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태입니다. 단, 다케토미지마의 촌락은 완전한 정연(井然)형식이 아니라 류큐왕부에 통치를 받은 16세기 중기 이전 유기적인 형상을 하고 있던 촌락을 개변하여 정연된 형상의 촌락을 더한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무야마(六山)라고 하는 6개 씨족의 각 촌락이 현재의 2개 촌락으로 통합되어 간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6. 먹거리/오시, 밭

경작에 적합하지 않아 밭농사가 중심인 다케토미지마에서는 1950년대 중반에서 60년대 중반은 섬의 대부분이 밭이었습니다. 또, 촌락 안에서는 ‘굿쿠(돌담)’로 둘러싸인 저택 내에도 밭을 만들어 야채 등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저택 내에는 ‘오시(별명:돼지변소)’라고 불리는 화장실과 돼지우리가 하나로 되어 있는 건물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배설물이나 먹다 남은 밥을 먹이로 해서 돼지를 키우고 다 자란 돼지는 식탁에 올리는 완전한 에코로지의 구조였습니다. 단, 현재는 위생상 문제가 있다고 하여 ‘오시’는 모두 폐지되었습니다.

참고문헌: 다케토미초 교육위원회
다케토미지마의 촌락과 민가 “다케토미지마 전통건물군 보존지구 보존계획 재검토 조사보고서” 2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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