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으로부터 만들어진 기술(염직)

1637년에 미야코(宮古)•야에야마(八重山)에는 연공 상납을 사람 수로 나누어 부과•징수하는 ‘인두세’가 실시되어 15세에서 50세까지의 남녀는 관리나 신체 장애자를 제외하고 모두 공조를 내게 되었습니다. 섬 사람들은 공조로 내기 위한 쌀이나 천을 생산하기 위해서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일을 했습니다. 천을 바치는 여자들은 마을 번소(番所)에 부설된 폐가에서 3개월 동안 감금상태로 관리의 엄격한 감독을 받으며 오로지 직물만 짰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직물기술이 발달했고 점점 완성도도 높아졌을 것입니다.
삼베실 원료 저마(苧麻)
민사
다카바타(高機)

다케토미지마에는 염직과 관련된 예능이 많습니다. 그것은 전래가요•부시(節)가요•무용 등의 장르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납세 지옥 속에서 뛰어나게 우수했던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관리에게 머리를 조아릴 수 밖에 없었던 천재 소녀들을 찬양한 것으로 “하라다티누마부나료마•윤타”가 있습니다. “나카스지누 누베마부시”, “군노라 누부나료마•윤타” 등에서도 생활 속에 염직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전쟁 전부터 섬에 들어와 있었던 구라시키 민예관 관장 도노무라 기치노스케(外村吉之助) 선생. 전쟁 후 다시 섬을 찾았을 때 섬에서 베를 짜는 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차렸습니다. 선생은 당시 류큐 정부에 직물 부활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기 오키나와는 국적이 일본이 아니라 미국의 통치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면의 수입이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면은 수입 규제 품목이었습니다. 선생의 덕택으로 면을 조달할 수 있게 되었고 민서 직조를 재개할 수 있었습니다.

가스리(絣)를 짜기 위한 씨실 쪽염색
다카바타(高機)
재료와 완성

그러나 섬에서 전쟁 전에 사용했던 지바타(地機)는 전쟁 중에 땔나무가 되어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다카바타(高機)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다카바타(高機)는 지바타(地機)와 동일하게 짤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가스리(絣)는 아야쓰부루(綾頭)로, 바탕실은 지쓰부루(地頭)로 실의 가닥 수를 적게 하여 야에야마 상포(고급 삼베)를 짤 때와 동일하게 했습니다. 수 많은 도전과 인내가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방법이 확립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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