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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토미지마 유가후관 / 마치나미관 / 기호인 슈슈칸 / 다케토미 민예관 / 구 요나쿠니케(旧与那国家) / 시사 | 물소 | 그 외 동물들

역사 유산관리의 역사

왜 다케토미지마(竹富島)는 야에야마의 다른 섬과 다른 길을 걷게 되었을까요? 이것은 다케토미지마의 유산관리 역사를 설명하는데 있어 하나의 유효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길을 걷게 된 것은 다케토미지마의 지리적 위치와 역사상에서 겪어 온 사건들, 섬의 지형이나 크기 등이 작용했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은 섬에 전해지는 “시키타분”이라는 시에서 볼 수 있는데 자손들에게도 자각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다케토미지마는 이시가키지마 바로 정면에 쟁반처럼 떠있는 산호초의 작은 섬나라이다. 그렇지만 보라! 손님 앞에 내민 쟁반처럼 고상하고 기품이 넘치지 않는가? 야에야마의 행정 발상지일 뿐만 아니라 교역선의 시작이기도 하다. 섬 사람들이여! 자긍심을 잃지 말고 무슨 일이든 힘을 합쳐 함께 하자’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 <우리 섬은 야에야마의 중심 이시가키지마에 가장 가까운 섬이라는 위치적인 이점이 있다. 야에야마의 최초 행정관인 사이토(西塘)를 나은 행정청의 발상지라고 하는 역사를 자각하라. 무슨 일이든 협력 일치의 정신으로 시대의 물결을 열어라>고 지금도 말을 하고 있는 듯하다고 섬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현재와 같은 섬을 조성하는데 힘쓸 수 있게 된 경위를 살펴 보기 위해서는 섬에 있어 근대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시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1896년에 섬에 있는 학교에서 11명이 졸업했고 그 중 5명이 고등과에 진학, 그리고 그 졸업생인 우치모리 마나즈(内盛真津), 우에마 보쿠리(上間保久利)가 모교 교단에 서서 후배를 지도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에마 보쿠리(上間保久利)는 섬의 지도자로서 메이지(明治) 중기부터 다이쇼(大正), 쇼와(昭和) 시대까지 활약했으며 후에 다케토미 공민관으로 변경된 다케토미 동지회라는 민주적인 자치조직을 구축했습니다. 이 시기는 류큐 처분, 인두세 폐지가 있었던 시기였으며 지금까지의 봉건적인 체제가 붕괴되고 민주주의의 흐름 속에서 섬의 장로제로 변하는 체제가 요구되던 시기였습니다. 그 시대의 조류에 민감하게 대응한 인재가 나타나 적극적인 사회변혁 속에서 다케토미지마의 자치능력이 길러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후 1949년 공민관이 중심이 되어 제정 분리를 실시했고 또 지금까지 무수하게 있었던 제사행사를 정리해 제사에 할애하고 있던 노동력을 경감시켰습니다. 이것은 민주화되었다고는 하나 전통적인 지연조직으로서의 성격을 계승하고 있었던 공민관이 지역사회를 떠받치는 구조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던 제사를 정리한다는 합리적인 행동을 실시할 수 있는 근대적인 조직이 되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다나두이(種子取祭)와 같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제사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남겨진 제사 하나하나가 소중히 다루어지고 질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성과로서 1977년에는 다나두이(種子取祭)의 예능이 국가로부터 중요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편, 1957년에 처음으로 다케토미지마를 방문한 도노무라 기치노스케(外村吉之助) 일행이 이 섬의 자연과 촌락의 경관, 그 속에서 행해지고 있는 제사행사, 염직 등에 깜짝 놀라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보존 계승을 제기해 주었습니다. 도노무라씨뿐만 아니라 높은 의식을 가진 많은 외래자들의 평가를 듣고 섬 사람들은 오래도록 계승해 온 문화가 모두에게 자랑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고 또 훌륭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외래자의 모두가 빛을 비춰 주는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1972년 복귀 무렵부터 들어온 섬과 섬의 문화를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에 의해 토지의 매점이 일어났습니다. 섬의 지도자들은 ‘금은 일대, 토지는 후세’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섬을 지키기 위한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그 운동 속에서 선진지와의 교류는 섬 사람의 의식을 향상시켰고 1986년에는 공민관 총회(주민총회)에서 만장일치로 “다케토미지마 헌장”이라는 섬의 방침이 제정되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다케토미초에서도 “다케토미초 역사적 경관형성지구 보존 조례”가 제정되었습니다. 문화청에서는 다음 해 4월에 다케토미지마의 촌락을 “중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선정했습니다. 오키나와의 원풍경이라고도 일컬어지게 된 전통적인 촌락경관에는 이러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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